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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상고인들의 노래 모음집!

by 고전매니아 2023. 5. 26.

 

논어 양화편에 공자가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를 배우면 뜻을 일으키고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풍속의 성쇠를 살필 수 있으며

정사의 득실을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다. 또한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군주를 섬기며

새와 짐승과 초목에 관해서도 많이 알게 된다."

또 아들 백어(伯魚)에게 "주남과 소남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마치 담장을 마주 대하고 서 있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주남과 소남은 시경 국풍의 첫째, 둘째 편명으로 여기서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는 속담이 생겼으며 식견이 얕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면장(面墻)이란 말이 탄생했다.

 

​시경은 공자가 애지중지했던 문사철을 대표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요, 시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맹자가 시 뒤에 경을 붙이며 시경이 됐고 훗날 사서삼경 중 삼경으로 지정되며 경전의 반열에 오른 유교의

대표적인 경서다.

 

시경은 사서오경이 그렇듯 원작자가 확실하지 않다.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는 제후국 사이에 떠돌던 민요, 민가의 3천여 편의 시를 정수만 뽑아 305편으로 간추린 것이 시경이라고 해 공자가 편찬자로 알려져 있다.

크게는 국풍,(風), 대아-소아(雅), 국송(頌) 셋으로 분류되며 그중 풍은 백성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를 모은 것이고 아는 궁중 연회에서 연주하던 일종의 연례악이며 송은 주로 종묘 제사 때 사용되던 악가(樂歌)이다.

모두 음률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으며 지금처럼 가사만 남았고, 남녀 간의 정과 이별을 다룬 풍(風)의 비중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시경의 모든 시는 곡조가 없다 뿐이지 실상은 가사에 지나지 않는다.

단지 유행가 같은 연가요, 구전되어 불린 민요인데, 한(漢)나라 때 모형이란 학자가 시경을 해석한 모시(毛詩)서가 나오며 시경의 순수한 맛은 점차 사라지게 됐다.

이후 한대의 유학자들이 시경을 정리한 교재와 시편을 해석한 서적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며 시경 또한

제멋대로의 해석이 난무하게 된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이 우리의 그 유명하신 주희 선생께서 시경의 해설집이라 할 수 있는 '시경집전'을 펴내며 시를 단순히 문학 차원이 아닌 '인의예지신' 차원으로 접근해 시경은 마침내 한 편의 철학서로 변질돼 버렸다.

참고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 선생은 본인의 문집인 서포만필에서 '관저'란 시를 대상으로 작중 화자가 문왕을 지칭하는 것인지 시적 화자가 별도로 있는 것인지 초론과 재론에 걸쳐 피력할 정도로 소모적인 탐구가 계속되었다. 대표적으로 든 예이나 이는 비단 김만중만의 문제가 아닌 대부분의 선비들이 이와 같이 시경을 연구해 왔다...

쉽게 말해 왜곡되게 해석해 후대인들에게 엄청난 혼선을 안겨준 것인데

유가 경전을 지정한 장본인답게, 특히 조선시대에서 학문을 다지고자 할 때 필독서가 됐으며

시험은 물론 작명이나 국정운영을 할 때도 많이 인용되었다.

다행인 것은 시대가 지날수록 시경의 얼토당토않은 해석들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

상고 시대 떠돌았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선율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시서도 시경집전도 아닌 성리학적 틀에서 벗어나 민속적인 유행가로 파악한 신 번역본으로

시경의 본래 모습에 가장 근접한 해석본이 아닌가 한다.

 

시경의 왜곡이 얼마나 심했는지 몇 가지만 예를 들어 보면 이렇다.

4.규목(樛木)

남쪽에 가지 늘어진 나무

칡덩굴 얽혀 있다

즐거워라 우리 님

복록이 우리 님 안심시키네

...

...

...

시의 내용은 단순히 사랑하는 임의 모습을 그린 것을

모시서를 비롯한 선행 해석본은 후비가 질투하지 않고 여러 첩을 두루 돌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고 한다.

49.순지분분(鶉之奔奔)-쌍쌍 메추리

메추리 쌍쌍이 날고

까치 어울려 나네

옳지 못한 그 자를

내가 낭군으로 모셔야 하나

까치 어울려 날고

메추리 쌍쌍이 나네

옳지 못한 그 자를

내가 남편으로 모셔야 하나

이 시는 남녀 간의 일반적인 애정행각에서 비롯된 단순한 애증 표현에 지나지 않는 시를

정약용 역시도 시경강의에서 선행저술서를 참고해 춘추좌전 노양공 27년 조에 나오는

'침상에서 나온 말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뜻의 구절을 언급하며 남녀 간의 음란한 짓을 풍자한 시로 풀이했다고 한다.

시경의 왜곡된 해석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84.산유부소(山有扶蘇)-산의 부소나무

산에는 부소나무

못엔 연꽃

미남은 안 보이고

미친 못난이만 보이네

산에는 큰 소나무

늪에는 하늘거리는 여뀌

건실한 남자는 안 보이고

교활한 사내만 보이네

이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시를 모시서는 엉뚱하게도 정나라 세자 흘을 풍자한 것이라 해석했고

주희는 음녀가 사통하는 애인에게 농담한 시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첫 댓글이 중요한 것처럼 시경의 해석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시경은 신화(神話)부터 시작해 덕화(德化)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으로 본인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며

무려 3,000년을 군림해 왔다.

 

 

하지만 고대 시집이라고 하기엔 우리네 생활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게 사실이다.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이 크지만, 시경에서 파생된 한자성어부터 전각의 명칭, 서적의 제목, 무덤의 호까지

우리에겐 굉장히 친숙한 이름들이 모두 시경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조족지혈 수준이겠지만, 어디까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내가 파악해 본 시경의

원천을 졸졸 시냇물처럼 나열해 볼까 한다.

우선 사자성어로 가장 먼저 시경의 파사드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인 '관저'란 시다.

사기 공자세가에서도 관저는 시경의 국풍이 시작된다는 평처럼

시경의 얼굴이자 시경의 런칭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풍성한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 관저의 시에서만 무려 6개의 고사성어가 파생될 정도로 관저는 시경을 대표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역시도 논어 팔일 편에서 "관저는 즐거울 때도 지나치지 않는 낙이불음(樂而不淫)과

슬플 때도 화기를 상하게 하지 않는 애이불상(哀而不傷)의 대표작이다" 이라며 관저를 통해 두 개의 고사성어를 만들어냈고 논어 태백에서도,

"악사인 지가 처음 벼슬할 때 연주하던 관저의 마지막 악장이 귀에 넘실거릴 정도로 가득하구나!" 라며

공자 최애곡으로 관저를 뽑았을 정도다.

 

시 역시도 곱씹을수록 고소하고 탄산수처럼 톡톡 튀는 즐거움이 가득한 시다.

관저에서 파생된 사자성어는 정숙하고 얌전한 여자를 뜻하는 *요조숙녀(窈窕淑女),

군자의 좋은 짝을 뜻하는 *군자호구(君子好逑), 상사병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한단 뜻의 *전전반측(輾轉反側), 자나 깨나 잊지 못한다는 뜻의 *오매불망(寤寐不忘), 다정한 부부 사이를 뜻하는 *금슬(琴瑟) 등이다.

사자성어만 봐도 관저란 시가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연애 시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유실된 1개의 연(聯)만 빼고 전문을 옮겨 볼까 한다.

1.관저(關雎)-물수리

끼룩끼룩 물수리는

황하의 강섬에서 울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는(窈窕淑女,요조숙녀)

임의 좋은 짝이지(君子好逑,군자호구)

올망졸망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고

아리따운 요조숙녀

자나 깨나 구하지

찾아도 찾을 길 없어

자나 깨나 생각하지 (琴瑟友之,오매구지)

끝없는 그리움에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새지 (輾轉反側,전전반측)

올망졸망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뜯고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窈窕淑女,요조숙녀)

금술 좋게 사귀지 (琴瑟友之,금슬우지)

...

올망졸망 마름 풀을

이리저리 골라 다듬고

아리따운 요조숙녀와

풍악 울리며 즐기지

 

관저는 상식적으로 알아둬서 손해 볼 거 없는 시경의 메인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에겐 유난히 사랑받는 시로 관저를 바탕으로 한 영화도 제작되었다.

 

*백년해로(百年偕老)

백년해로는 부부가 평생 즐겁게 산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시경 31번째 시에 그 출전이 담겨 있다.

31.격고(擊鼓)-북소리

...

이리저리 머물다가

타고 다니던 말조차 잃었다

그 말을 찾아

숲 속을 헤매네

죽거나 살거나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생사를 함께하자고 약속했지

그대의 손을 꼭 잡고(執子之,집자지수)

죽을 때까지 함께하리(與子偕老,여자해로)

아, 멀리 떨어져 있으니

우리 함께 살지 못하게 되네

아, 멀리 떨어져 있으니

우리 약속 지킬 수 없게 되네

시경은 제목만 보고는 그 내용을 전혀 유추해 볼 수 없다.

북소리가 이토록 서글프고 애절할 줄 어찌 알았으리오~

격고는 관저와 마찬가지로 중드 몇몇 작품에서 애달프게 인용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시 중 하나다.

*절차탁마(切磋琢磨)

논어 학이편을 읽어보면 자공이 공자에게

'시경에 칼로 자른 듯이 하고 줄칼로 간 듯하며 정으로 쪼고 쇠로 간 듯이 한다고 했습니다..'

라고 질문한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이 절차탁마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다.

절차탁마는 학문은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한다는 뜻으로

원전은 시경의 55번째 시인 기욱에 나오는 말이다.

55.기욱(淇奧)-기수 물굽이

저 기수 가의 물굽이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 무성히 자라네

빛나는 우리 님

깎고 다듬은 듯(如琢如磨,여탁여마)

쪼고 간 듯

장중하고 당당하며

반짝이고 훤하네

빛나는 우리 님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위의 여탁여마에서 절차탁마라는 성어가 나왔다.

*학명구고(鶴鳴九皐)와 타산지석(他山之石)

학명구고와 성문우천은 아래의 시 그대로 '학이 구고에서 우니 그 소리가 온 세상에 울린다'라는 뜻으로

숨어 자는 은자의 명성이 더 멀리 퍼진다는 뜻이다.

순자 유효에 처음 언급됐고 훗날 사기 골계열전에 인용되며 더 유명해 졌다.

타산지석은 남에게도 배울 것이 있단 뜻으로 더이상의 해설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성어의 전거가

시경 184번째 시에서 나왔다.

184.학명(鶴鳴) -학 우는 소리

학이 구고에서 우니(鶴鳴九皐,학명구고)

그 소리 온 들판에 울리네(聲聞于天,성문우천)

물고기 깊은 못에 잠겼다가

이따금 물가로 나온다

즐거워라 그의 동산에

박달나무 있고

그 아래 개암나무 자라네

쓸모없이 보이는 타산지석으로도(他山之石,타산지석)

가히 옥을 가는 숫돌로 쓸 수 있다

...

학명의 전체적인 뜻은 초야에 묻힌 인재를 타산지석으로 삼자란 뜻이라고 한다.

 

*후안무치(厚顔無恥)

후안무치는 뻔뻔한 사람을 일컫는 사자성어로 역시 시경 198번째 시에서 유래됐다.

 

198. 교언(巧言)-교묘한 말

부드럽고 좋은 나무

임이 심었으니

오가는 유언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네

허풍 치는 큰소리

입에서 나오고

생황 혀 같은 교묘한 말(巧言如簧,교언여황)

그 얼굴 진정 두꺼워라(顔之厚矣,안지후의)

...

교언은 소인배들의 참언에 의해 조정에서 밀려난 선비가 세상을 개탄한 시라고 한다.

*훈지상화(壎篪相和)

훈지상화는 형이 흙 피리를 불면 동생이 대 피리를 불어 화답한다는 뜻으로 형제간의 우애가 화목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성어다. 형제간 화목함을 표현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사자성어가 아닌가 한다.

훈지상화는 시경 199번째 시에서 파생됐다.

 

199.하인사(何人斯)-저 사람 누구인가

...

맏이는 흙 피리(伯氏吹壎,백씨취훈)

둘째는 대 피리 부네(仲氏吹篪,중씨취지)

어린 시절처럼 지내고 싶은데

진정 나를 몰라주면

닭과 개와 돼지 내다가

그대를 저주하리다

하인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형제간의 우애와 아무 상관 없는 버림받은 여인의 노래인 기부시라고 한다.

*은감불원(殷鑑不遠)

은감불원은 남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맹자 이루 편에도 언급되는데 255번째 탕이란 시에 직접적으로 나온다.

 

255.탕(蕩)-위대하도다

문왕이 이르기를

아, 슬프다 너희 은나라여

사람들이 또한 말하기를

넘어지고 뽑혀 뿌리가 드러나니

가지와 잎사귀 아직 해 없어도

실은 뿌리가 먼저 뽑힌 것이지

은나라의 거울은 멀지 않네 (殷鑑不遠,은감불원)

하나라 걸을 교훈으로 삼았어야지

애첩 포사로 유명한 주유왕을 쫓아낸 정당성을 밝힌 노래라고 하는데 하나라 마지막 군주인 걸왕을 본보기로

삼지 못했음을 질책하며 은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다고 노래하고 있다.

 

*진퇴유곡(進退維谷)

진퇴유곡은 진퇴양난, 사면초가와 같이 물러설 곳이 없음을 뜻하는 성어로

마찬가지로 시경의 257번째 시에 나타나 있다.

257.상유(桑柔)-부드러운 뽕나무

저 숲 속을 바라보니

사슴들이 우글거리네

여러 신하들 서로가 속이며

잘 지내지 못하네

사람 또한 말하기를

진퇴유곡이라고 한다(進退維谷,진퇴유곡)

상유는 시대를 한탄한 시라고 한다.

 

*일취월장(日就月將)

한문 그대로 풀이하면 날마다 달마다 발전한다는 뜻으로 괄목상대와 비견될 만큼 가장 많이 쓰는 기초적인 사자성어가 시경 288번째 경지란 시에 그대로 언급된다.

288.경지(敬止)-공경함

공경하고 공경하라

하늘은 너무 밝으니

천명을 얻기가 쉽지 않다

높고 높은 위에만 있다고 말하지 마라

오르내리며 일을 하고

날마다 아래 땅을 살피니

이 못난 소자는

총명하거나 공경하거나 못했지만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이뤄(日就月將,일취월장)

배워서 밝은 덕 빛내리라

맡고 있는 중임을 도와

밝은 덕행으로 나아가는 길 보여주기를...!

경지는 군주가 종묘에 제사를 올리며 스스로를 경계한 시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시경에서 파생된 사자성어인데 분명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시경은 고대의 가요지만, 선대 학자들은 시경의 시 한 편 한 편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시경이 유가 경전이었기 때문인데 조선 역시도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사서오경은 선비들의 공부해야할 필수 과목이 되었다.

그중 시경은 다방면으로 벤치마킹 되며 각종 오마주로 알맞게 활용되었다.

학창 시절 시험 문제로 자주 출제되었던 선조들의 덕행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도 시경의 영향을 받은

노래 중 하나다.

6.도요(桃夭)-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어린 가지

복사꽃 활짝 피네(灼灼其華,작작기화)

시집가는 저 아가씨

온 집안 화락케 하네

복숭아나무 어린 가지

복숭아 주렁주렁 열리네(有蕡其實,유분기실)

시집가는 저 아가씨

온 집안 화목케 하네

..

이 화락한 시를 가지고 모시서는 후비가 갖춰야 할 덕목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는데

그냥 시집가는 여인을 축하한 노래고 중국에선 결혼 축사로도 많이 쓰인 시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시다.

용비어천가는 전체적으로 시경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으나 악장 가사 한문 문장 중에 도요의

'작작기화, 유분기실'이 그대로 인용됐다고 한다.

 

도전 골든벨에도 출제된 세종 때 백성과 더불어 즐기잔 뜻의 '여민락'도 시경의 242번째 시인

영대에서 따온 것이다.

 

242.영대(靈臺)-영대

영대를 짓기 시작하니

재어보고 다져보고

백성들이 나서 거들자

며칠 안 돼 이룩하네

이룩할 때 서둘지 마라 했으나

백성들은 자식이 어버이 일 돗듯 모이네

대왕이 영대 정원에 있으니

암사슴 수사슴 엎드려 노네

암사슴 수사슴 살져 윤기 흐르고

백조는 깨끗하고 희기만 하다

애왕이 영대 늪에 있으니

아, 못 가득히 물고기 뛰어노네

..

영대는 임금이 천명을 받자 백성들이 함께 즐거워해 그 덕이 짐승에게까지 미치게 됐다는

태평성대를 노래한 가사다.

맹자 양혜왕 편에 영대는 군주가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시라며 이 시를 '여민해락(與民同樂)'으로 표현해 마침내 세종 때 '여민락'이란 아악을 만들어 궁중 의식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왕의 비서실이었던 승정원도 시경에서 따온 것이다.

후설(喉舌)은 목구멍과 혀라는 뜻으로 왕명의 출납 임무를 맡았던 승정원의 속칭이다.

시경 대아 면(緜)편에

"군주의 명을 안팎으로 펴내니, 군주의 입인 셈이다"(出納王命 王之喉舌,출납왕명 왕지후설)

가 원전으로 승정원을 후설의 직으로 불렀다.

궁궐의 어전 뒤에 놓인 '일월오악도' 병풍 역시도 시경에 나온 천보의 시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166.천보(天保)-하늘의 보살핌

..

..

..

하늘이 그대를 보호하니

흥하지 않은 게 없지

마치 산처럼 언덕처럼

산등성이처럼 구릉처럼 크고 높네

마치 냇물이 흘러내리듯

불어나지 않는 게 없네

상현달처럼 점점 차 가고

해가 떠오르는 것 같네

마침 남산처럼 무궁해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네

마치 소나무 잣나무처럼 무성해

그대를 계승하지 않는 게 없어라

천보는 군주를 축복한 노래이기에 통치자의 상징이 되어 일월오봉도란 이름으로 왕실 어좌 뒤편에 배설되었다.

 

정조대왕이 현륭원 능행시 한강에 '배다리'를 놓은 것도 시경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정조는 1년의 한 번씩 현륭원을 참배할 때마다 용배를 사용하였으나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하여 직접 주교지남(舟橋指南)을 만들었는데 배다리 제도는 시경에도 실려 있다고 직접 말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바로 시경 대아편에 실려 있는 대명이다.

주문왕이 태사(太姒)를 위수(渭水)에서 친영하기 위해 배로 교량을 만들어 이용한 데서

왕가의 친영(親迎)이란 말이 생겼는데 시의 내용은 이렇다.

236.대명(大明)

대국에 따님 있었으니

마치 하늘의 소녀 같았다

길일을 가려 예식 날 정해

위수 가로 나가 친히 영접하네

배를 이어 다리 놓으니

그 빛이 매우 밝았다.

이는 주문왕이 처음 행한 것이기에 왕가의 친영을 천자의 예로 삼았다고 한다.

다음은 궁궐의 전각 이름이다.

정도전이 조선 최초의 궁궐인 정궁을 지을 때 이름 짓기를 경복궁은 시경 주아 편에서 따 왔다고 했다.

태조 4년 10월 7일 조에 나온다.

'신이 분부를 받자와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을 모시리라.’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짓기를 청하옵니다..'

이를 두고 경복궁 이름을 설명할 때,

정도전이 시경 주아 편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이는 시경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만 보고 붙복한 거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시경엔 주아 편이 없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시경이 풍, 아, 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아는 주나라의 아(雅), 즉 '크도다 주나라여' 뭐 그런 뜻으로 주아를 다른 말로 '대아'라고 한다.

또 경복궁의 원류가 된 개이경복(介爾景福)이란 구절도 소아 편을 비롯해 여러 군데 나온다.

207번째 소명(小明)에서도 확인되지만, 정도전이 취한 경복궁의 원전은 대아 편의 기취(旣醉)에 나온다.

247.기취-이미 취하고

술에 벌써 취하고

덕에 이미 배불렀다

군자가 만년토록

큰 복 누리기를 비네(介爾景福,개이경복)

술에 벌써 취하고

네 안주 이미 올리니

군자가 만년토록

밝고 뚜렷하기를 비네

 

이 경복궁을 시작으로 '계속하여 공경한다'는 뜻의 경복궁 후궁들의 처소였던 집경당(緝敬堂)

대아 편의 문왕(文王)에서 따 왔고, 창경궁의 침전인 '기쁘고 경사스럽다' 뜻의 환경전(歡慶殿)

그 이름을 소아 편 초자(楚茨)에서, '계속해서 밝게 빛난단' 뜻의 임금의 경영 장소이자 갑신정변의

은신처였던 집희(緝熙)는 대아 편의 문왕에서, '복을 내려준다'란 뜻의 대왕대비 처소이자 순정효황후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낙선재 석복헌(錫福軒)은 주송 편 열문(列文)에서, '맑은 물결'이란 뜻의 창덕궁 후원에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위풍 편 벌단(伐檀)에서 따 왔으며,

화성 행궁의 유여택(維與宅)과 화령전(華寧殿)도 각각 대아의 황의(皇矣)에서 차유여택(此維與宅) 그리고 국풍 편 갈담(皇矣)의 귀령부모(歸寧父母)에서 따 온 것이다.

이밖에 궁궐의 수많은 전각과 그 전각을 드나드는 문의 명칭까지 수많은 이름을 시경에서 차용해 지었다.

 

참고로 박정희 정권 때 출범했던 유신(維新)제도는 바로 시경 대아 편 문왕(文王)의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시 내용 중에 '주나라가 비록 오래됐으나 천명이 새롭기만 하네' 란 주수구방 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

이란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유신은 낡은 제도를 고쳐 새롭게 한단 뜻이다.

이는 당시 특별보좌관이었던 박종홍, 임방현 두 명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인데 시경뿐 아니라

경서에 조예가 깊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즐겨 보던 수호지(水滸誌,수호전) 역시도 대아의 면(緜)이란 시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고공단보가 당시 왕의 압제를 피해 빈 땅 서쪽의 칠수가로 떠났던(率西水滸,솔서수호) 고사에서 인용한 것인데 물을 벗어나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류성룡이 쓴 예전의 잘못을 거울삼아 앞으로 닥칠 우환을 경계한다는 뜻의 징비록(懲毖錄) 역시

시경 소비(小毖)란 시에서 차용한 것이다.

295.소비(小毖)-대비하는 마음

내가 경계하는 것은(予其懲,여기징)

후환에 대비하는 것이니(而毖後患,이비후환)

내가 쏘는 벌을 물리치지 않으면

스스로 독한 침에 쏘이게 되지

처음에는 저 작은 뱁새도

훨훨 날며 큰 새 되는 법이니

다난한 나랏일 감당 못해

나는 아직 뱁새처럼 여뀌 풀에 머물러 있다.

내용 역시도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노래인 만큼 류성룡은 이 시의 구절을 인용해

'나는 앞서의 일에 데어서 후환을 경계하노라' 라며 임진왜란의 쓰디쓴 교훈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끝으로 동묘 정전에 가본 사람들은 한 번씩 봤을 법한 수많은 현판 중

유청집희(維淸緝熙)는 시경 유청(維淸,맑은 기운)의 내용 중 맑게 밝게 이어지니 끊이지 않는단

'유청집희'의 구절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원호였던 현륭원(顯隆園) 역시도 시경에서 따 온 것이며

데미안과 유리알 유희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애장 서적이 시경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시경에 이르길, 어찌어찌 뭐 뭐 뭐라며 옛 선비들은 정말 많이도 시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때론 교육의 목적으로 때론 자아 성찰의 목적으로 때론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며

더 나아가 윤리적으로도 접근했다.

이와 같이 시경은 우리가 생활하는 도처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시경을 읽으며 느낀 거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더 깊숙이 이해하려면

시경을 비롯한 유가 경전을 반드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시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아주 절묘하고도 교묘한 수단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경에서 그런 함축적인 은유를 찾기란 힘들다.

오히려 그런 은유를 집어넣은 사람들이 대단할 정도로 시경의 가사는 원초적이면서도 소박하고 순진무구하게 그려져 있다.

또 세계 최고의 연애 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남녀 간의 정을 다룬 내용이 주를 이루고

'아'와 '송' 부문에선 역사의 장엄함과 함께 중국의 옛 민속적 향음도 덩달아 음미할 수 있었다.

시경에 나열된 대부분의 시는 정말 단순하고 반복되는 구절도 많아 옛 선비들이 외우기 쉬웠을 정도로 단조로운 편이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모두 아름답고 절절하고 귀여우면서도 장대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씹으면 씹을수록 정감 넘치고 애정이 가니 옛날 사람들이 왜 끼고 살았는지 알게 됐다.

시는 때론 혼탁해진 정서를 순화시키는 특효약이 되기도 하고 다양한 사물과 동식물을 더 자세히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더불어 고대인들의 순박함 때문인지 시경은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더욱더 풍성하게 해준다.

시경의 정치적 해석은 중요치 않다.

시경은 단지 문학사적으로 훌륭한 자료일 뿐이며, 사료의 가치로써도 귀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인문학으로써도 나무랄 데 없고, 교양 과목으로는 필수다.

공자는 육예를 설명하며 시경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그 말을 이제서야 알게 됐고

안회가 시경을 왜 사랑했는지 안회의 여린 감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됐다.

끝으로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시경을 이렇게 규정했다.

"시경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

시경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 말을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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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상고인들의 노래 모음집!

논어 양화편에 공자가 하신 말씀이 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공부하지 않느냐? 시를 배우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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