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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문법 04 - 허자(虛字)의 용법 ④ 소(所)

by 고전매니아 2023. 4. 29.

1. 소(所)자의 用法은 지시(指示)하는 작용(作用)과 대칭(代稱)하는 역할을 겹하고 있다. 마치 영어(英語)의 관계대명사(關係代名詞)와 비슷한 점이 있다. 따라서 순수한 지시대명사(指示代名祠) 인 피(彼) 와 차(此)등과는 다르다. 이것은 특수한 장소에 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甲) 밭을 가는 소 → 耕田

(乙) 소가 갈고 있는 밭 → 牛

위에서 (甲)(乙)로 바꿀 때에 소(所)자가 첨가(添加)되는 현상(現象)을 주의(注意)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지(之)자는 생략(省略)될 수 있으나 소(所)자는 생략(省略)될 수는 없다. 즉 '牛所耕田'이라고 하면 (乙)의 뜻과 다를 바가 없겠으나, '牛耕田(소가 밭을 간다)'라고 하면 하나의 句文이 되어 버려서 '田'을 강조한 사결(詞結)이 아닌 것이다. 다음 이같은 예(例)를 몇 개 더 들어보자.

예1) 蒙古人騎之馬

몽고인이 타던 말

예2) 機械製之紙

기계로 체조한 종이

예3) 仲子居之室, 食之粟

중자(中子)가 살던 집, 먹던 곡식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騎', '製', '居', '食'」등 동사(動詞)의 주체(主體)는 소(所)자 바로 위에 위치(位置)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主體)를 표시(表示)하는 말이 이미 상문(上文)에 명시(明示)되었을 경우에는 소(所)자 위에 그것을 다시 꼭 쓸 필요는 없다. 이런 예(例)로,

예4) 故余幼時, 每朝入,讀書乃熟於他童。

그러므로, 내가 어렸을 적에 매일 아침 서당에 들어가면, (내가) 독서하는 것이 다른 아이보다 익숙하였다.

예5) 復至飛來峯下, 尋前見村落而焉。

내가 비래봉(飛來峯) 아래로 다시 이르러서. (내가) 전에 보았던 촌락(村落)을 찾아가서 쉬었다.

예6) 夫以一人兼百人之工, 則成之物必多矣。

대저 한 사람이 백 사람의 기술을 겸할 수 있다던, (그 사람이) 이룩할 수 있는 물건은 반드시 많으리라.

예7) 成之物, 一人兼十百 ; 論獲之價, 一人可最二三。

(사람이) 이루는 물건으로 따진다면, 산 사람이 열이나 백 사람을 겸할 수 있으나, 얻는 가치로 따진다면, 사람이 두 세 사람을 겸할 수 밖에 없다.

 

2. 다음 '牛所耕者'하고 하면. 여기서 자(者)자는 '之田'을 대결하는 것이다. 이때는 '田'가 이미 앞에 언급(言及)되었을 경우이다. 예로,

예8) 農夫耕田, 成以牛, 或以人。

一日之中, 牛耕者,常數倍於人。

농부가 발을 갈 때, 혹은 소로 혹은 사람으로 한다.

하루 동안에 소가 가는 밭은 언제나 사람보다 몇 배가 된다.

그러나. 막연히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킬 경우도 자(者)자를 쓸 수가 있다. 따라서 '所~者'가 하나의 숙어(熟語)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전술(前述)한 자(者)자의 용법(月法) 2와 比較된다. 예로,

예9) 愛者, 法活之 ; 憎者, 法滅之。

랑하는 사람은 법(法)을 고쳐서라도 살리고, 미워하는 사람은 법(法)을 어겨서라도 죽인다.

예10) 則吾求者, 無不可乎?

그렇다면 내가 구하는 것은 불가(不可)함이 없는가?

예11) 有機器, 則十人百人之力僅能造者, -人之力能造之。

기계가 있으면, 십인(十人)이나 백인(百人)의 힘으로 겨우 이룰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다.

예12) 今日之珍爲寶者, 皆昔日土不一顧者也。

오늘날 값진 보배로 여기는 것은, 모두 옛날에는 비루한 똥흙같이 여겨 한번 쳐다보려고도 않던 것이다.

3.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위에 이미 소(所)자지시(指示)하는 역할을 했을 것 같으면, 그 다음에는 의례히 이어지는 자(者)자가 생략(省略)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所)자가 여기서는 자(者)자의 역할까지 겸(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대단히 많다. 예로.

 

예13) 愛, 讐法活之 ; 所憎, 曲法滅之。

사방하는 사람은 법을 고쳐서라도 살리고. 미워하는 사람은 법을 어겨서라도 죽인다.

예14) 所見聞, 一切之於詩”

본 것 들은 것 모두를 詩에 이를 나타낸다.

예15) 求不遂,

구하는 것을 이루기 못하던, 하던 것도 문득 막힌다.

예16) 此情之必趨,勢之,必至, 非焌法嚴刑之能禁也。

이것은情이 만드시 쫓는 것이며,勢 가 반드시 이르는 것이니,嚴峻흐上刑法으로 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때의 소(所)자를 번역할 때는 '…하는 것, …하는 사람' 등 자(者)자의 뜻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4. 또한, 소(所)자위(爲)자와 연합(連合)하여 피동(被動)의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때의 소(所)자는 실은 상기(上記) 3항(項)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예로,

예17) 善人爲惡人逐。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쫓겨났다.

이것은 결국'善人爲惡人所逐之人(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쫓거 난 사람이 되었다)'와 같은 것으로 '所逐'은 '所逐之人', 혹은 '所逐者'가 생략(省略)된 것에 불과(不過)하기 때문이다. 그밖의 예로,

예18) 火藥爲中國發明。

화약은 중국(中國)에 의하여 발명(發明)되어졌다.

예19) 月氏爲敗, 乃遠去。

월씨(月氏)는 갈노(匃奴)에게 패배하여 멀리 떠나갔다.

예20) 幼時碌, 不爲諸兄知。

어렸을 적에는 평범하여, 여러 형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다.

예21) 凡人欲作大事, 須立志不爲祿利誘, 不爲威武屈。

범인(凡人)이 큰 일을 하려면, 모름지기 뜻을 세우고 녹리(祿利)에 유혹되지 아니하며, 위무(威武)에 굴복되지 아니하여야 한다.

5. 또한, 소(所)자는 구문(句文)을 변동(變動)시키어 표현(表現)을 강조하는데 활용(活用)된다.

예로, '問汝何所思?(네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에서 소(所)자를 빼버리고 '問汝何思?(너는 무엇을 생각하는가고 묻는다)로 하면 의미상(意味上)의 차이(差異)는 없지만 구문상(句文上)으로는 아주 달라진다. 즉 '汝何思'는 의문구문(疑問句文)의 의문사(疑問詞)가 도치(倒置)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정치(正置)시키면 '汝思何?' 라고 되어 하나의 판단문구(判斷句文)인데 비(比)하여, '汝何思?'는 '汝思何?'의 도치(倒置)이므로 이것은 동빈관계(動賓關係)의 서사문구(敍事句文)인 것이다. 이러한 서사문구(敍事句文)을 판단문구(判斷句文)으로 만들어 표현(表現)의 강조(强調)를 기하는 경우는 앞장에서 누누히 설명한 바 있다. 이것은 자(者)자5項과 比較된다. 예로,

예22) 七十老翁何求。

칠십(七十) 늙은이가 다시 바랄 것이 무엇이리오?

예23) 氣廉恥, 何不至。

진실로 염치가 없다면, 하지 않을 짓이 무엇이리오?

예24) 我亦何愛於一官, 特不欲以愛之者害之

나 또한 한 관직(官職)에 애착할 것이 무엇이리오마는, 특히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것을 해치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예25) 似, 天地一沙

표표히 같을 게 무엇일까? 천지간(天地間)에 한 마리 갈매기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何所'와 같이 쓰이는 것은 하(何)자가 의문사(疑問詞)이기 때문에 도치(倒置)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는 꼭 판단문구(判斷句文)으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 위에서는 일부러 그렇게 번역하였지만, 우리말에서는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서사문구(敍事句文)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그 강조(强調)되는 표현(表現)이 약화(弱化)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화(强化)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cf> 七十老翁復何求。

칠십(七十) 늙은이가 다시 바랄 것이 무엇이리오?

(칠십(七十) 늙은이가 다시 무엇을 바라리오?)

6. '何所思?(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구문(句文)으로는 '燕所思(생각하는 것이 없다)'와 '有所思(생각하는 것이 있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不何思'라든가 '不思何物'이라고 쓸 수는 없다. 물론 여기서'無所~'와 '有所~'에는 '之物', '之人', '之事'등이 생략(省略)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들은 대개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며, 또 드러내기가 곤란(困難)한 경우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無所~',

'有所~'의 용법(用法)이 자주 쓰인다. 예로.

예26) 恃而無恐。

믿는 것이 있으면, 두러움이 없다.

예27) 子亦有聞乎?

그대도 들은 바가 있는가 ?

예28) 人必有不爲, 而後能有爲。

사람은 반드시 하지 못하는 것이 있은 뒤에,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예29) , 無不到。

궁벽한 시골 땅 등 가지 않은 데가 없다.

예30) 於書無

책에 있어서는 살펴보지 않은 것이 없다.

예31) 往而不自得。

가서 저질로 깨닫지 못한 것은 없다.

끝에 예29) 예30) 예31) 예문(例文)은 '無所~不~'의 형식(形式)으로 이중부정구문(二重否定句文)인데, 긍정(肯定)을 강(强)하게 표현(表現)하는 방법(句法)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신아사출판 홍인표저 한문문법(1976)